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8의 순간》을 처음 틀었을 때 그냥 가볍게 보다 잠들겠다 싶었는데, 어느새 화면을 붙잡고 제 학창시절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꺼내고 있었습니다. 국내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드라마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청춘로맨스라 부르기엔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18의 순간》을 청춘로맨스라고만 부르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우와 수빈의 풋풋한 감정선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두 사람이 처한 환경의 결이었습니다.강제 전학이라는 낙인을 달고 새 학교에 들어온 준우는 처음부터 방어적입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도 "그럴 필요 없었는데"라고 툭 내뱉고, 자신의..
대한민국 교권 침해 피해 교원 수는 2023년 기준 연간 5,000건을 넘어섰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참교육》을 보고 나서야 그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학교폭력과 교권붕괴, 드라마가 보여준 민낯일반적으로 학교폭력(학폭)은 피해 학생 사이의 문제로만 다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참교육》을 보면서 느낀 건 그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는 겁니다. 드라마 속 가해 학생 준영은 단순히 '나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국회의원 아버지라는 권력 구조가 그를 보호하고, 교사들은 그 눈치를 보며 스스로 무력화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직장생활 초반에 겪었던 어떤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상사가 틀린 말을 해도 아무..
승진과 사랑을 한 번에 손에 쥔 사람을 보면서, 솔직히 처음엔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은밀한 감사〉 최종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주인아가 스캔들과 좌천을 딛고 감사실 전무(Executive Director)에 오르는 과정, 그리고 기준에게 동거를 제안하는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거든요. 저 역시 비슷한 기로에서 '성취냐, 관계냐'를 고민했던 시간이 있어서 이 드라마가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좌천에서 전무까지: 주인아가 바꾼 건 직급이 아니었다드라마 초반 주인아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회사를 성취와 인정의 무대로만 바라보던 인물이었죠. 그런데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용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기에 가볍게 볼 요량이었는데, 예고편 하나에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건드려졌습니다. JTBC 새 드라마 의 첫 번째 이야기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마음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외모 비하 발언 한마디가 어떻게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어디서 조금씩 아물 수 있는지를 조용하게 보여줬습니다.공감 위로 — "나도 내 얼굴이 싫을 때가 있어요"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살 좀 빠지면 더 예쁠 텐데" 같은 말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마음속에 머뭅니다. 대단한 악의도 아니고, 상대는 금세 잊어버리는 말이지만 듣는 쪽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그 문장이 떠오릅니다. 저 역시 한동안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제 외모를 지나치게 의식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드..
4년을 함께한 사람보다 처음 만난 남자가 더 생각난다면, 그건 배신일까요, 아니면 솔직함일까요. 드라마 《봄밤》을 보면서 저는 이 질문에 꽤 오래 붙잡혀 있었습니다. 익숙함이 사랑인 줄 알고 버텨온 관계가 실은 감정 소모(emotional exhaustion)에 가까웠다는 것을 정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새삼 확인했습니다.감정소비: 왜 오래된 관계가 오히려 더 지치게 만드는가드라마 속 정인은 4년 차 연애를 이어가면서도 이미 마음이 방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커플처럼 보였지만, 프로포즈 자리에서조차 연봉 협상을 하듯 건조하게 말을 꺼내는 상대 앞에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비슷한 시기를 겪어봐서 더 와닿았습니다.여기서 '감정소비(emoti..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재벌X형사2' 최종화가 딱 그랬습니다. 유성원 체포라는 통쾌한 결말 이전에, 이수가 오랜 누명을 벗고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마주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화면을 멈추게 됐습니다. 단순한 수사극이 아니라 상처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이야기였습니다.누명의 무게 — 오디오 테이프가 밝힌 진실강력일팀 사무실에 발신인 없는 상자가 배달되는 장면부터 최종화는 심상치 않은 속도로 달려갑니다. 상자 안에 담긴 것은 실종됐던 유성원의 모델 중 한 명이었고, 헤라는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데테러팀 시절부터 셀 수 없는 죽음을 목격해온 베테랑 형사가 그 순간 버티지 못했다는 사실 — 제가 직접 보면서도 그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이후 감식반에서..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함이 사라지고 나니 제가 얼마나 그 타이틀에 기대고 있었는지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20년을 버텨온 동만, 그리고 퇴직 후의 저저도 처음엔 이 드라마가 그냥 '꿈을 포기 못 하는 40대 아저씨'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이 성공하며 박수받는 구조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보니 그보다 훨씬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주인공 황동만은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영화감독 지망생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목소리를 높여 남의 영화를 비판하고..
정의를 지켜야 할 판사가 스스로 법을 무너뜨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ENA 드라마 '유어 아너'는 손현주, 김명민 주연으로,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선택이 얼마나 처참한 결말로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처음부터 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그 틀린 선택이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부성애라는 이름의 함정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지키는 행동은 본능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그 반대였습니다. 마이클 판사의 모든 선택은 '아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무고한 사람 한 명을 파멸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드라마의 발단은 단순한 교통사고입니다. 애덤이 오토바이를 탄 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바로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는 판타지 장치를 품고 시작하지만, 이 드라마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시간의 역행드라마 초반, 주인공 혜자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시계로 시간을 되돌리며 남들보다 유리한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꺼내는 장치가 바로 시간역행(Time Reversal)입니다. 시간역행이란 이미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대가가 반드시 따라온다는 설정으로 긴장감을 만들어..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이렇게까지 가슴을 건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 글은 그 이야기입니다.부모의 사랑드라마 초반,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던 애순의 엄마가 딸이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전 시댁까지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거창한 대사 하나 없이, 그냥 묵묵히 걷는 엄마의 뒷모습 하나가 전부였는데도요.여기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핵심 서사 구조, 즉 무조건적 수용(unconditional acceptance)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무조건적 수용이란 상대의 잘잘못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