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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 무가치함, 50대 위로)

fly in the sky 2026. 9. 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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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함이 사라지고 나니 제가 얼마나 그 타이틀에 기대고 있었는지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20년을 버텨온 동만, 그리고 퇴직 후의 저

    저도 처음엔 이 드라마가 그냥 '꿈을 포기 못 하는 40대 아저씨'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이 성공하며 박수받는 구조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보니 그보다 훨씬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황동만은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영화감독 지망생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목소리를 높여 남의 영화를 비판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유독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영화제에서 구입했다는 낡은 군용 코트입니다. 그는 이 무겁고 낡은 코트를 입으면서 '역사의 한복판에서 주목받는 영화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코트 왼쪽 가슴에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것 같은 구멍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구멍을 동만의 내면적 결핍(內面的 缺乏), 즉 자신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공허함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내면적 결핍이란 외적 성과가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이 코트 장면에서 생각보다 오래 멈췄습니다. 퇴직 후 제가 자꾸 예전 명함을 꺼내 들던 이유가 이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동만이 집 앞 어린이 보호 구역 속도 표시기 앞에서 매일 달리기를 한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 숫자가 조금씩 갱신될 때마다 그는 아직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붙듭니다. 제 경험상 이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잃어봐야 압니다.

    • 동만의 낡은 코트: 이상과 상처를 동시에 품은 자기 서사의 상징
    • 속도 표시기 달리기: 타인의 인정 없이도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행위
    • 감정 워치: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감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장치
    요약: 드라마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그 감각은 50대 퇴직자인 저에게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열등감이라는 감정, 드라마가 다루는 방식

    이 드라마가 보통의 로맨스나 성장 드라마와 다른 점은 열등감(劣等感)을 정면으로 해부한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반응으로, 심리학에서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가 이 개념을 인간 행동의 핵심 동인 중 하나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드라마는 이 열등감을 동만 한 사람에게만 몰아넣지 않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게 나누어 줍니다.

    동만을 밀어내는 파인 멤버 경세는, 사실 자신의 데뷔작이 동만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평생 짓눌리며 삽니다. 재영은 은하의 재능을 곁에서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대신 빼앗는 쪽을 선택합니다. 최대표는 은하의 날카로운 안목에 불을 켜고, '비꾸 도끼'라는 별명으로 그녀를 조롱합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사람들 중에 순수하게 나쁜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들 자기 방식으로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특히 잘 건드린 지점은 바로 투사적 평가절하(投射的 評價切下)라는 심리 패턴입니다. 투사적 평가절하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졌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방어 기제입니다. 재영이 은하의 작가적 재능을 '버려질 것들에만 눈독 드린다'고 비난한 장면이 정확히 이 패턴이었습니다.

    반면 동만은, 온갖 독설과 이기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은하의 재능 앞에서 이 패턴을 깨뜨립니다.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그는 그녀의 감각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고, 그 태도가 재영과의 결정적 차이를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인간'을 다루는 드라마는 미숙한 주인공을 성공으로 정당화하는데, 이 드라마는 조금 달랐습니다. 성공 이전에 타인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요약: 드라마는 열등감을 악인의 특성이 아닌 인간 보편의 심리로 그리며, 그 안에서 누가 타인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는지를 가장 핵심적인 질문으로 삼습니다.

     

    50대의 제게 이 드라마가 남긴 것

    솔직히 이 드라마의 메시지 중에 조금 단순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파워는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은하의 말은, 현실에서는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벽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제 경험상 50대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오래 남은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형 집만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뒤에도, 동만이 영화 한 편을 찍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결국 형을 위해서였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형 앞에서 한 번만 제대로 된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이것이 동만을 20년 동안 버티게 한 진짜 파워였습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의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교수가 정립한 이론입니다(출처: Stanford University). 이 드라마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것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기 전에, 내가 먼저 나의 가치를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을 지속시켜 줄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20년도 버틸 수 있다는 것.

    제가 직접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은 '나는 지금 나의 가치를 내가 믿고 있는가'였습니다. 퇴직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젊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움츠러들던 그 감각이, 동만이 속도 표시기 앞에서 달리던 이유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금 아쉬운 드라마였지만, 따뜻했습니다.

    요약: 드라마는 성공의 유무가 아닌 자기 효능감, 즉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이야기하며, 50대의 삶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위로를 건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어떤 분들께 추천하나요?

    A. 일반적으로 이런 드라마는 20~30대 청춘 서사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오히려 40~50대에게 더 깊게 울립니다. 오랜 시간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뭔가'라는 질문이 찾아오는 분이라면 특히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Q. 드라마에서 감정 워치는 어떤 역할인가요?

    A. 감정 워치는 착용자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장치로 극 중에 등장합니다. 단순히 감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감정 패턴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동만이 경세의 실패를 보며 죄책감 없이 기뻐했다는 걸 워치를 통해 인식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Q. 주인공 동만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계속 봐도 될까요?

    A. 저도 초반에는 동만의 독설과 이기적인 행동이 꽤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사람을 끝까지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이 이 작품의 진짜 주제에 가깝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오히려 제대로 보고 계신 겁니다.

     

    Q. 드라마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A. 동만이 영화를 완성하고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마무리됩니다. 전형적인 성공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드라마가 강조하는 건 수상 자체보다 그 여정에서 회복된 관계들과 자기 신뢰입니다. 화려하게 끝나기보다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결말입니다.

     

    결론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상처와 열등감을 하나씩 안고 있다 보니 전체적으로 무겁게 흐르는 구간이 분명히 있었고, '사랑이 파워의 원천'이라는 메시지는 현실의 복잡함에 비하면 다소 단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드라마를 오래 기억할 것 같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내 인생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대사 한 마디가 아니라 20부작 내내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의심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드라마가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오래 접어뒀던 일을 다시 꺼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IOgHe3a2Q4&t=40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