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 SF 액션물로만 생각했습니다. 핵전쟁, 타임머신, 미래에서 온 생존자. 그런데 다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그런 거대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은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는 게 더 무섭다"는 대사 하나가 며칠 동안 떠나질 않았습니다. 〈시지프스: The Myth〉, 단순한 SF가 아니었습니다.
핵전쟁이라는 설정, 드라마는 어떻게 썼을까요?
〈시지프스: The Myth〉의 핵심 전제는 이렇습니다. 미래에 한반도에 핵전쟁이 발생하고, 그 전쟁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건너옵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을 '업로더(Uploader)'라고 부릅니다. 업로더란 양자 전송(Quantum Transfer) 기술을 이용해 과거 시점으로 위상 이동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넘어온 사람들인데 이 과정에서 방사능 피폭 부작용이 생긴다는 설정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드라마에서 핵전쟁의 시작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후 서울에도 핵이 떨어지고, 연쇄적인 보복이 이어지면서 하룻밤 사이에 한반도가 초토화된다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핵무기의 파괴력은 현존하는 어떤 재래식 무기와도 비교가 안 됩니다. 출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핵폭발 시 발생하는 전자기 펄스(EMP)와 방사성 낙진(Fallout)은 수백 킬로미터 밖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낙진이란 핵폭발 후 대기 중에 퍼지는 방사성 입자를 말하며, 직접 피폭이 없어도 장기간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줍니다.
드라마 제작비가 200억 원 규모였다는 점도 이 설정을 뒷받침합니다. 폐허가 된 서울을 비롯한 대규모 세트와 CG가 그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미래 폐허 장면보다 오히려 현재 도심을 배경으로 한 추격 장면들이 훨씬 긴박하고 몰입감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산이 화면에 다 보이지 않아도, 설정의 무게감은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 업로더(Uploader): 양자 전송 기술로 과거에 도착한 미래인. 이동 과정에서 방사능 피폭 부작용 발생
- 낙진(Fallout): 핵폭발 후 대기에 퍼지는 방사성 입자로 직접 피폭 없이도 치명적
- 전자기 펄스(EMP): 핵폭발 시 발생하며 전자 장비를 광범위하게 무력화
- 시그마: 드라마 속 핵전쟁을 기획한 빌런 캐릭터로, 전쟁 이후 세계 재편을 노림
시간여행의 규칙, 납득이 됐나요?
시간여행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부 규칙의 일관성입니다. 관객이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고 느끼는 순간 몰입이 깨지거든요. 〈시지프스〉는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개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타임 패러독스란 과거를 바꾸는 행위가 그 변화를 일으킨 원인 자체를 소멸시키는 논리적 모순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서해가 전쟁을 막으러 왔는데, 그 행동 자체가 전쟁의 조건을 만들 수도 있다는 역설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저는 두 번 정도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다시 돌려봤습니다. 인과율의 고리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중반부 이후로는 설정을 따라가기보다 감정선을 따라가게 됐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시간여행 드라마의 고질적인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설정을 완벽하게 설명하려다 보면 이야기가 딱딱해지고, 감정을 살리려다 보면 설정이 허술해 보입니다.
드라마 학계에서도 이 문제는 오래 논의됐습니다. 출처: 한국연구재단(KCI) 등재 논문들에서도 SF 장르의 '설정 과부하(Setting Overload)' 현상이 서사 몰입도를 저하시킨다는 분석이 여럿 있습니다. 여기서 설정 과부하란 장르적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규칙을 쌓다가 오히려 시청자가 이탈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시지프스〉가 딱 그 경계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고 제는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박신혜의 생존 연기는 이 복잡한 설정을 감정으로 덮어버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어린 서해에게 "앞으로 정말 힘들 거야,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은 설정을 잊게 만들 만큼 진했습니다. 저도 살면서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막막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혼자 살아남는 게 더 무섭다" — 이 대사가 오래 남은 이유
드라마가 끝나고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핵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서해가 한태술에게 던진 한 마디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으면 행복할 거 같아?" 이 질문은 단순히 극 중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가 아니라,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압축한 문장이라고 제는 생각합니다.
생존(Survival)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흔히 물리적 생명 유지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해가 미래에서 과거로 건너온 이유는 단순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심리학적 개념인 사회적 연결감(Social Connectedness)이 떠오릅니다. 사회적 연결감이란 타인과의 유대가 개인의 생존 의지와 정신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말하며, 고립이 신체적 통증만큼 뇌에 실제 고통으로 처리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옆에 있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서해가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을 겁니다. 빌런인 시그마가 "세상 사람들이 전부 자기 가족이 먼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게 단순한 악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느꼈습니다. 조금만 더 이야기의 결말을 깔끔하게 정리했다면, 이 주제가 훨씬 선명하게 전달됐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저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있는가?' 핵전쟁이나 시간여행보다 이 질문이 훨씬 오래, 더 깊이 남는 드라마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지프스 더 myth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드라마 후반부에서 한태술과 서해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 각자의 선택을 내립니다. 업로더 기술의 완성 여부가 전쟁 발발과 직결된다는 설정인데, 마지막 결말은 "전쟁을 막는 것"과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마무리됩니다. 결말이 열린 느낌으로 끝난다는 평도 있어서, 직접 보고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Q. 업로더가 방사능에 피폭되는 이유가 뭔가요?
A. 드라마 설정에 따르면 양자 전송 과정 자체에서 방사선 노출이 발생합니다. 미래의 핵전쟁 이후 오염된 환경을 통과해 이동하는 과정이 원인으로 묘사됩니다. 이 부작용 설정이 업로더들이 모두 같은 처지라는 연대감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SF 장치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Q. 시그마는 왜 핵전쟁을 일으키려 하나요?
A. 시그마는 핵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자신만이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죽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상을 리셋하려는 극단적 허무주의 빌런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드라마가 그의 논리를 아주 일방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시청하면서 저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Q. 박신혜 연기가 진짜 좋다던데,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나요?
A.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린 서해에게 이별을 고하며 "포기하지 말고 견디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말투는 차분한데 눈빛에서 감정이 쏟아지는 연기였고, SF 장르에서 흔히 묻히는 감정선을 살려낸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생존 액션보다 이런 조용한 장면이 더 오래 남는 배우라고 느꼈습니다.
결론
〈시지프스: The Myth〉는 핵전쟁과 시간여행이라는 스케일 큰 소재를 다루면서도, 결국 가장 오래 남기는 질문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있는가.' 업로더, 타임 패러독스, 양자 전송 같은 개념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지만, 그 모든 장치의 끝에 있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었습니다.
중반 이후 이야기가 복잡해지면서 설정을 따라가기 버거웠던 건 사실이고, 결말의 정리가 조금 더 깔끔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드라마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서해의 선택이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안 본 분이라면 초반 3화 정도만 봐도 그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